[이경국 칼럼 6] 이제 분배를 이야기할 때 - 1편(도입)
2019-06-10 입력 | 기사승인 : 2019-06-10
데스크 bokji@ibokji.com


<이경국 사회복지실천과교육연구소장> 


사회복지는 좌우싸움이 아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복지를 좌우싸움으로 몰아간다.


이 글을 쓰기 전에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사회복지 인프라를 확충시키고 분배를 강조하는 것이 '빨갱이' 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빨갱이'는 게릴라를 뜻하는 프랑스어 '파르티잔(partisan)'이 우리나라에 와서 '빨치산'으로 발음되다 그것이 '빨갱이'가 된 것이다.


분배를 논하는 것은 사회복지사로서 당연한 의무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야한다. 분배를 논한다 해서 강성 사회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라 이야기를 듣는 것도 경계한다.


우리가 쓰는 여러 민감한 단어의 대부분이 그 의미를 알려면 정치, 역사, 사회를 알아야 한다.


만일 단적으로 사회주의가 '악' 이라 생각한다면 대표적 분배 국가이자 복지국가인 북유럽 국가들은 '악'한 나라이고 살기 힘든 나라여야 한다.


비만인 아이가 있다. 어린나이에 고혈압에 폭식까지 한다. 마른 아이가 있다. 영양부족이라 빈혈도 있다. 이 두 아이 앞에 피자가 있다. 이 피자의 분배방식은 어때야 하는가?


비만인 아이에게 많이 주는 방법은 아이의 건강 상황을 악화할 뿐이다. 그렇다고 마른 아이에게 다 주는 것도 그리 옳은 방법은 아니다.


피자가 8조각이니 반 정도는 그대로 두고 세 조각과 한조각 정도로 나눠서 세 조각은 마른아이를 한 조각은 비만인 아이에게 나눠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만인 아이에게 한 조각을 주지 않는 것이 더 좋다라고 할 수 있지만 분배의 사회에서 100대 0은 무의미하다. 인간이기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보편성을 가지고 분배하는 것이 옳다.


비만인 아이에게 준 한 조각은 분배와 평등의 상징이다. 평등에는 절대적 평등과 상대적 평등이 있는데 이 평등은 상대적 평등이다.


이 글에서 분배를 논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이 상대적 평등에 있다.


복지는 개인이 원하는 모든 것을 충족할 수 있도록 분배하는 것도 아니고 많이 가진 개인의 모든 것을 없는 자에게 모두 나누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이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시 논점으로 돌아와서, 앞에서 이야기한 예시와 그 해법에서 보듯 분배란 그리 간단한 덧셈 뺄셈이 아니다. 이 '분배'를 깊이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는 이 칼럼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분배'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그 '분배'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순기능을 하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번 도입편은 여기까지 이다. 다음 편에서는 “왜 분배가 대안인가?”가 주제이다.



데스크 bokji@ibokj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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