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극복하고 인권운동가 꿈꾸는 서혜영 소장
2018-03-16 입력 | 기사승인 : 2018-03-16
데스크 bokji@ibokji.com


<ⓒC영상미디어> 


서혜영(35) 씨는 올해 명지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동생 서보민(27) 씨까지 같은 학과에 합격했으니 겹경사다. 적지 않은 나이에 학업을 시작하는 이들 자매는 온몸의 근육이 위축돼 굳어가는 척수성 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SMA) 환자다. 감정 표현 등 신체의 기본 기능은 유지되지만, 근육이 점점 약해져 자발호흡이 어려워지고 평생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루게릭병과 유사하다.


서혜영 씨는 호흡기 근육마저 약해지면서 정상적인 호흡조차 힘들 때도 있지만, 오랫동안 키워온 학업의 열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서 씨는 “장애는 불편함일 뿐”이라며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혜영 씨는 “장애인 자립 활동을 돕는 기관을 운영하면서 더 많은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고 했다.


지난 2월 28일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각종 신경근육계 희귀질환 때문에 호흡근육이 약화돼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거나 졸업한 것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세 살 때부터 근육이 마르는 병인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이종명(19) 군, 생후 15개월 때 척수성 근위축증 판정을 받은 곽희진(23) 씨 등 총 15명이다.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라는 이름의 이날 행사는 서 씨 자매처럼 사지마비와 호흡장애를 극복하고 대학교 입학 및 졸업을 맞은 신경근육질환 환자들을 축하하기 위해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마련했다. 행사명은 근육이 마비되는 루게릭병을 진단받고도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된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호흡재활센터를 운영하는 강남세브란스병원은 2012년부터 올해까지 일곱 번째 행사를 열고 있다. 희귀 난치성인 근육병, 루게릭병, 척수성 근위축증 등으로 치료받은 환자들이 힘겹게 학업을 마무리한 것을 격려하고,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기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는 자리였다.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들은 서서히 근육이 퇴화하기 때문에 평생 휠체어를 타거나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한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는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때가 많다. 행사에는 서 씨 자매처럼 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7명과 졸업생 4명 등 11명이 참석했다.


한국교통대학교 디자인학부에 입학 예정인 김어진(20) 군은 교통수단에 관심이 많아 철도 기관사가 꿈이었지만 근육병을 앓고 있는 신체적 한계 때문에 디자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 씨 자매, 김 군 같은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지만 재활치료를 통해 연세대 컴퓨터공학과를 무사히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신형진 씨도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방문했다.


서혜영 자매에게 병마가 찾아온 건 돌 무렵이었다. 걸음마가 늦어 찾은 병원에서 1만 명 중 한 명이 걸린다는 희귀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30분도 채 앉아 있지 못하는 몸이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손가락뿐이었지만 자매는 검정고시로 꿈을 이어갔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손가락뿐


1남 2녀 가운데 두 딸이 희귀질환으로 고통을 받자 부모 마음은 갈가리 찢어졌다. 그래도 부모님은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법조인을 꿈꾸던 아버지 서종순(61) 씨는 딸의 간호를 위해 경찰직 공무원을 사직하고 어머니 오승자(59) 씨와 함께 맞벌이를 위해 집 근처에 부동산중개업소를 차렸다. 두 딸에게 위급한 상황이 생길 경우, 즉시 오토바이로 달려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서혜영 씨는 “장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게 힘들어 누워서도 하지만 수시로 자세를 바꿔가며 공부했다”고 했다. 근육이 굳고 오그라들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호흡기 없이는 잠들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기도 했다.


시험은 녹록지 않았다. 검정고시 중졸 자격을 갖고 있던 서혜영 씨는 사회복지사 3년 이상 경력자라면 지원할 수 있는 사회복지학과에 응시했다. 사회복지기관을 설립·운영해 자격은 충분했지만, 서 씨는 근육장애인이라는 사실을 학교 측에서 알게 되면 불합격 처리할까 염려해 처음에는 알리지 않았다.


서 씨는 논술시험 때 A4사이즈 용지 한 장을 한 시간을 걸려 간신히 채울 수 있었다. 미리 써간 자기소개서를 논술 문제지 뒤편에 옮겨 적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 씨는 “글씨를 예쁘게 못 써서 부끄러웠다”면서 “사회복지 업무를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신념을 갖고 일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적었다”고 설명했다.

면접 보는 날, 서혜영 씨와 같은 조의 수험생들은 사회복지 경력이 빵빵한 단체장들이었다. 사회복지사 경력으로 특별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마지막 입시여서 경쟁률은 더 치열했다. 면접관들은 서 씨가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라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면접관은 서혜영 씨의 이력서에 ‘함께가자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함께가자도봉IL센터) 소장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유령단체가 아닌지, 실질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서 씨는 “함께가자도봉IL센터는 희귀 난치병 환자의 자립 지원을 위한 국내 최초의 단체라고 설명하고 활동 상황을 자세하게 브리핑해드렸다”며 “면접관 교수님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다른 수험생에게는 질문조차 하지 않고 내게 질문들을 하셨다”고 했다.


서 씨 자매는 함께가자도봉IL센터 운영을 위해 언니는 주간 과정, 동생 보민 씨는 야간 과정에 합격했다. 두 딸의 합격 소식에 아버지 서종순 씨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며 눈물을 쏟았다.
 

현재 서혜영 씨는 ‘함께가자도봉IL센터’에서 동생 보민 씨와 7명의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다. 언니 혜영 씨는 소장, 동생 보민 씨는 기획실장으로 4년째 일하고 있다.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자매가 자신의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 다른 장애인을 돕기 위해 나선 것이다.


정부와 소통 위해 사회복지학 공부


서혜영 씨는 “일반 장애인들과 달리 희귀난치성장애인들은 인공호흡기를 달고 살기 때문에 장애인복지관에서조차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며 “‘함께가자도봉IL센터’는 저처럼 호흡기를 쓰고 활동하는 중증장애인들을 돌보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했다.

서 씨는 “신경근육질환 환자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미비하다”며 “정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 사회복지학 공부를 택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의 복지정책에 올바른 정책 제안을 하려면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 소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면서 “우리와 같은 단체가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했다.



<▶ 지난 2월 27일 강남세브란스병원 본관 중강당에서 열린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행사에서 김근수 병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지난 2월 27일 강남세브란스병원 본관 중강당에서 열린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행사에서 김근수 병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지난 2월 27일 강남세브란스병원 본관 중강당에서 열린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행사에서 김근수 병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함께가자도봉IL센터’ 누리집(https://dobongcil.modoo.at/)에 들어가 동생 서보민 씨가 제작했다는 2016년 송년회 동영상을 보면, 중증장애인 인턴 모집과 교육, 직원 역량 강화, 지역사회 연계 활동, 정책 개선 활동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서 씨는 “‘함께가자도봉IL센터’는 도봉구로부터 26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아 운영한다”며 “3월 8일까지 서울시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기 위해 대학 신입생 기분을 낼 여유도 없다”고 했다.


서울시가 26개 사회복지센터 가운데 2곳을 선정해 연간 1억 원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서 씨는 이 프로젝트가 ‘함께가자도봉IL센터’ 제2의 도약을 위한 종잣돈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캠퍼스를 누비고 봄바람이 불면 엠티도 가고 싶다는 서혜영 씨. 서 씨는 자신과 같은 희귀난치병 환자를 돕는 복지 전문가를 꿈꾼다.


서 씨는 “2000명인 넘는 희귀난치성장애인은 고개를 못 가눌 정도로 중증장애인”이라며 “여의도 이룸센터 화장실에 중증장애인용 간이침대를 설치한 것처럼, 참신한 정책 제안으로 우리 사회를 중증장애인과 정상인이 공존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오동룡│위클리 공감 기자


<이 글은 ‘위클리 공감’에 게재된 내용으로 공공누리에 의거 공유함>
 



데스크 bokji@ibokji.com

프린트 메일보내기

기사에 대한 댓글

  이름 비밀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