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마지막 주말에 가족의 의미를 깊이 느끼게 해주는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딸을 키운 야구 스카우트로 나오는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라는 영화입니다.
거칠고 무뚝뚝하며 대화에 서툰 주인공 거스는 딸이 6살 되던 해에 부인과 사별하고 딸을 일년간 남동생에게 맡겼고 13살 되던 해에는 기숙학교로 보냅니다. 성인이 된 딸은 변호사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반면, 노쇠하고 병약해 가는 아버지 거스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드래프트 대상 선수들을 분석하는 신예 후배에게 자리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의 상태를 알아차린 직장 동료는 변호사로 일하는 딸에게 거스의 신인 드래프트를 위한 출장에 동행해주길 청합니다. 아버지와의 마음의 거리가 멀어진 딸은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거부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출장에 동행합니다.
이때부터 영화는 헨리 폰다와 제인 폰다가 출연한 ‘황금 연못’처럼 부모 자녀 간의 갈등이라는 주제에 따라 전개됩니다.
아이는 부모의 말이 아닌 행동을 따라 한다
딸은 아버지가 가 있는 동네 펍에서 당구 시합으로 남자를 눌러버리기도 하고 자신이 운전하겠다는 아버지의 고집을 꺾어버리고 기어이 본인이 운전대를 잡습니다. “왜 이렇게 고집이 세냐?”는 아버지의 일갈에 딸은 “누굴 닮았나 보죠”라고 응수합니다. 아버지는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에 미국에도 존재하고 있었던 성역할에 맞게 딸을 키우려 노력했지만 딸은 아버지의 말이 아닌, 아버지의 터프한 행동을 동일시하고 따라 하며 큰 것입니다.
‘바담풍과 바람풍’의 이야기처럼, 흔히 부모님들은 자신의 결점이라 생각하는 행동을 아이가 닮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이에게 바른 행동을 할 것을 지시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실패하게 마련이고 부모님 스스로가 그러한 습관을 바꿈으로서 바람직한 동일시의 모델을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버림받음에 대한 공포와 인정 욕구
영화의 후반부에서 아버지는 딸에게 ‘왜 중요한 (변호사)일을 제쳐 놓고 이런 데 와서 시간 낭비를 하는지’ 딸에게 나무라듯 말하고 딸은 “저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어요. 변호사가 되려고 노력한 건 아빠에게 버림받지 않고 인정받기 위한 것이었어요”라고 합니다.
아빠와 함께 야구를 보면서 싸구려 음식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도 합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최고의 순간이며 버림받는 느낌은 아이의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버림받음의 두려움은 딸이 성인이 된 후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전도 유망한 변호사인 남자 친구는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못해 안달이 나 있지만 친밀한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그녀는 둘 사이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자꾸 뒤로 미루기만 합니다. 오히려 출장 길에 우연히 만난 젊은 남자에게 마음이 끌립니다. 그 젊은이는 기다리지 못하는 남자 친구와 달리 그녀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고 그녀의 안전거리를 존중해 줍니다.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 같으십니까? 우리 시대의 많은 부모님들이 날로 치열해져 가는 경쟁에 대한 두려움 때움에 아이와 한 공간에 살면서도 아이에게 ‘함께 하는 시간’을 선물하기보다는 과중한 학업 부담 속으로 아이를 밀어 넣고, 때로는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부모님의 사랑을 통째로 잃을지 모른다는 ‘버림받음의 공포’를 심어주기도 합니다.
IMF 이후 직업 안정성이 크게 흔들린 결과 특정 직종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된 결과로 입시 경쟁이 격화된 나머지 많은 부모님들이 그 해악을 알면서도 아이들을 무한 경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모든 것을 잊고 부모님과 함께 했던 시간’의 기억을 안전기지 삼아 아이들은 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 한 달간 이러한 경험을 얼마나 제공하셨는지 돌아보시는 시간을 가져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 이동우님은 인제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임상의사로서의 진료업무와 함께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증진을 위한 정신보건업무, 정신건강정책 개발에도 참여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 읽기, 즉 마음 다독(多讀)에 매진해 왔다.
기사에 대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