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세 도시 이야기
도시의 구조와 성격을 바꾸는 근복적인 변화는 누가 주도할까
2015-03-05 입력 | 기사승인 : 2015-03-05

「꿈의 도시 꾸리찌바」, 이미애 저, 서해문집, 2006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요시다 타로 저,안철환 역, 들녘 , 2004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에서 배운다」, 김해창 저, 이후, 2003



 

생태 친화적, 인간 친화적 도시란 어떤 곳일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 도시환경은 얼마나 변화할 수 있을까요?
자본이 지배하는 위계적이며 서열적인 현대 도시. 그런 곳을 사람 중심의 생태 친화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일이 가능할까요?
- 이 세 권의 책에서는 기존의 도시 인프라(에너지, 문화시설, 교통과 같은 하부구조)를 바꾸기만 하면 얼마든지 현대 도시를 문화·예술 친화적이고 공동체성이 생동하는 공간으로 변하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본래 서양의 중세도시는 왕과 영주로부터 독립한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자유와 자치를 상징했습니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의 저자 크로포트킨도 그런 의미에서 중세 도시를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해방 공간으로서의 도시사회가 근대에 들어서면서 국민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그 결과 도시가 지금의 자본 중심적, 서열적인 모습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 고대 그리스 ‘폴리스’를 ‘도시국가’로 번역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폴리스를 도시적 생활양식으로 이해하는 해석은 오류입니다. 고대 그리스 폴리스는 인구 5천에서 많아 봐야 5만 명 정도로 아테네 절정기의 인구도 3만을 넘지 못했습니다. 현대적 개념으로 보면 촌락 정도입니다. 그리스는 본토에 100여 개의 폴리스가 연합하는 사회구조였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폴리스를 근대화하고 자유로웠던 도시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폴리스는 노예제도로 유지되는 자유인들만의 도시였습니다. 이방인과 외국인도 포용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과 언어가 다른 이를 바르바로이 barbaroi 라 부르며 차별하는 폐쇄적 사회였습니다.
 
지금 우리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요?
제 주변 사람의 생각은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돈 벌면 농촌의 한적한 곳에서 여생을 보내겠다고 합니다. 아이들 키우러 내려가고 싶다, 부모님 모시러 내려가겠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내려가겠다, 생태적으로 살기 위해 떠나겠다….
도시는 능력이 없어 떠나지 못한 자들이 남아 연명하는 곳일까요?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주역 크메르루주는 도시를 불필요한 곳으로 여겼습니다. 소비만 하고 생산하지 않는 공간으로 생각했습니다. 수도 프놈펜의 모든 사람을 강제로 농촌으로 보내 농사짓게 했습니다.
정말 도시는 문제만 만들어내는 골칫덩어리, 해체되어 사라져야 할 공간일까요?
- 세 권의 책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도시던 시골이든 어디에 사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에서 배운다」에 등장하는 독일 남부 인구 20만의 작은 도시 프라이부르크. 프라이부르크는 ‘태양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에너지 자치 도시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절약(절전형 전구 보급, 에너지 절약주택 개발보급), 에너지 효율화(천연가스를 이용한 지역발전), 에너지 다양화(태양광, 풍광, 수력, 지열) 등 크게 이 세 가지 정책을 통해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 교통문제나 쓰레기 문제를 생태적 정책으로 지혜롭게 해결합니다. 특히 시장과 공무원, 그리고 여러 환경단체가 함께 정책을 만들어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재미와 장난이 만든 도시 꾸리찌바는 도시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시스템 대부분을 사람 중심으로 재편하는 실험을 진행합니다. 특히 서울시가 그대로 가져온 꾸리찌바 교통체계는 버스를 지하철처럼 빠르고 편안한 교통수단으로 만들어 낸 성공적인 사례입니다. 도시 중심부와 주변부를 효율적으로 이어주는 교통체계의 핵심은 도시 외곽에 거주하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입니다. 이는 사람들의 차이를 줄이는 밑거름이 된다고 합니다.
- 시내 거리를 차가 다니지 않게 바꾸었을 뿐인데 사람이 모이고 자연스럽게 소통하기 시작합니다. 일그러진 공동체가 살아나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행정 간섭을 최소화하여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때, 즉 사람을 놓아줄수록 도시는 긍정적 모습으로 변화한다고 합니다.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에서는 우리 미래에 닥칠 위기를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해야 할지 미리 경험했습니다. 석유가 고갈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섬나라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으로 말미암아 고립됩니다. 인위적 석유고갈로 마주한 에너지 재난과 식량 재난, 아바나는 도시 생태 농업이라는 녹색혁명을 통해 이를 지혜롭게 극복해 나갑니다.
- 도시농업이 확산하면서 농업의 가치가 높아지고 농적 삶이 보편화합니다. 또한 이런 변화가 지역공동체를 살리고 강화합니다.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서 서로 보살핍니다. 이웃과 인정과 나눔이 생동합니다. 수확한 농작물로 물물교환도 합니다. 놀라웠습니다!
 
위 세 도시 이야기를 읽으니 몇 가지 생각이 이어집니다.
도시의 구조와 성격을 바꾸지 않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근본적 변화는 누가 주도할까요?
- 꾸리찌바의 경우, 정치적 지도력이 도시의 변화에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누가 지도자인가가 중요해 보입니다. 당시 꾸리찌바 시장이 대통령과 친분이 있어 쉽게 연임에 성공했고 그래서 일관된 시정 운영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특히 시간이 충분했으니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작업에 큰 영향을 준 것입니다(시민의 참여는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그래서 지방자치선거의 중요성이 떠오릅니다. 사회 공공의식이 부족한 사람이 선출되면 이후 이를 수정하는 일이 매우 힘들어집니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생태적 도시설계가 한국 정치인의 미래 비전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정치적 지도력이 중요하다 해도 정치인에게 우리의 삶을 맡길 수 없습니다. 내 삶의 변화가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이런 변화는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변화의 대가로 주체적 삶이 제한될지도 모릅니다.
아바나는 생태도시를 만드는 일에 사회주의국가라는 특수성이 작용했습니다. 농업혁명의 핵심은 토지인데, 아바나의 토지 소유는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혁명적 변화가 쉽게 이뤄졌습니다. 짧은 시간에 체질을 바꿨습니다. 생태적 도시구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협동조합’ 활동도 그런 사회적 토대가 있었기에 수월했습니다.
-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바나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적용할 수 없는 이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바나는 우리 생활을 농적으로 바꿔야 할 필요성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나아가 사회구조에 관해 성찰하게 합니다. 어우러져 사는 사람살이는 사람의 마땅한 본성인데 이를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사회구조에 대해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돕고 사회를 사회답게 하려는 사회복지사에게도 이런 여러 도시의 이야기는 도전과 자극, 지지와 격려가 됩니다.


함께 보면 좋을 영화 한 편 소개합니다.

「공동체의 힘 : 쿠바의 녹색혁명」, 페이스 모건 감독, 2006The Power Of Community: How Cuba Survived Peak Oil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도시농업에 관한 영화입니다.
도시 농업이 살아나니 자연스럽게 이웃들의 왕래가 활발합니다. 키운 농작물을 서로 나눠먹고 바꿔먹습니다. 협동조합을 통해 협력하고 우정을 쌓습니다.

영화의 핵심은 도시농업이지만 저는 그로 인해 자연스레

생동하는 이웃관계가 보입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저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하며 보았습니다. 복지, 환경, 교육, 시민운동… 서 있는 곳을 달라도 지향하는 바는 비슷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 박용남, 이후, 2006

「꿈의 도시 꾸리찌바」의 저자 박용남이 지은 책입니다. 지구촌 전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대안운동 사례를 직접 살펴보고 정리했습니다.
통행량이 많은 복잡한 도로에서는 길 건너편 블록과의 사회적 교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세력권이 자신의 집에 국한할 정도로 급격히 축소되어 고립이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게 된다. 141쪽
자동차가 없을 때에는 마을의 길이 놀이 공간이자 사회적 교류의 장으로 기능하다가, 자동차가 한 대씩 점진적으로 증가하면서 사람들의 영향권은 서서히 집 앞의 인도로 후퇴하고, 급기야는 집 안으로 들어가 나올 수 없을 정도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142쪽


이웃 사이 인정이 넘치는 마을 공동체를 살리는 일에 뜻을 두는 사회복지사, 그런 이에게 이 책은 다양한 영역과 교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합니다. 환경운동가, 건축가, 행정가에게도 마을공동체는 궁극적 지향임을 알았습니다. 함께 지혜를 모으면 좋은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책 후반부에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다루며 대전 오정동의 선교사촌을 지켜낸 시민모임을 소개합니다. 그 모임을 이끄신 분이 김조년 교수님이라 무척 반갑고 자랑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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