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백만 촛불에게
2016-12-12 입력 | 기사승인 : 2016-12-12
  참 슬픈 계절이다. 이토록 시리도록 슬픈 시절이 있었던가. 급변하는 세계질서 속에 세계만방에 우리의 국력을 자랑해도 모자랄 판에 우리는 대통령을 내려오라 외치는 슬픈 촛불 축제를 펼치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방의 횃불이요, 선진문화국으로 많은 나라들로부터 선망의 눈길을 받아온 조국 대한민국은 한 순간에 지구상의 변방으로 전락하고 말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반만년 유구한 세월 동안 숱한 외세의 침략에도 민족의 찬란한 빛을 유지하고 있는 지구촌의 유일무이한 나라가 아닌가. 오늘 우리가 손에 든 촛불은 이 나라를 살리는 생명의 촛불이 되어야 한다. 체제를 전복하는 광란의 불꽃이 아니라 새 시대 새 세상을 여는 소중한 불씨가 되어야 한다.

  다행히 전국적인 촛불집회는 무자비한 폭거를 배제했다. 선량한 소시민의 마음이 담긴 깨침의 소리였다. 이기주의와 어리석음에 물든 기득권에 항거하는 우렁찬 북소리였다. 단 한 건의 불상사도 없이 백만 함성이 이루어낸 경이적인 시위문화는 우리 국민의 우수성을 세계에 떨친 예술혼의 만개였다. 세계는 지금 우리나라를 주시하고 있다.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떨쳐 일어난 소시민의 조국애가 어떤 길로 나아갈지 지켜보고 있다.

 완벽한 초인들이 살지 않는 이상 사람이 사는 나라치고 부패가 없는 나라는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정권과 제도가 바뀌어도 부패는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현상이요,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그렇기에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소금과 같은 방지책도 만들고 부패를 발효로 승화하는 지혜도 필요한 법이다. 오늘 우리에게 슬픔으로 다가온 부패를 우리는 반드시 새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발효의 공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우리의 이 슬픔의 함성이 결코 나락의 길로 빠져드는 길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땅에 꽃이 되어 흩뿌려진 호국영령들의 순수한 영혼에 부끄러움을 남겨서는 안 된다. 다시금 일어나 동방의 횃불이 되고 세계인의 앞날을 밝히는 지혜로운 번영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이 촛불이 헛되지 않으려면, 다시는 이 슬픈 계절을 만나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 슬픔을 남긴 주체가 누구인지 똑바로 보아야 한다. 

  그 슬픔의 주체가 누구인가. 우리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자가 과연 누구인가. 대통령인가. 최순실 무리인가. 누구인가. 물론 대통령의 과오도 크고 커지만 단언컨대 대통령도 최순실도 아니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으로 국가를 반석위에 올려놓을 일에 몰두하기는커녕 권력에 안주하며 권력에 기대앉아 탐욕을 누리려고 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이 지금의 대통령을 만들지 않았는가.

  권력에 안주해 탐욕을 누리려는 사람은 철면피에 살생에도 능하다. 자신들의 권력에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보이면 하나같이 거짓과 권세를 무기로 선량들을 내치면서 그들만의 아성을 쌓아간다. 그리고 그 집단은 자기들이 만든 먹잇감을 향해 서슬 퍼런 회심의 미소를 던진다. 그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제2, 제3의 최순실을 만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지금 정치권은 자신들의 당리당략과 집권에 국민의 슬픈 촛불을 이용하기만 급급하다. 어려운 글로벌 경제 여건 속에서 당장 대통령이 내려오면 국가를 대표하는 수반도 없이 국가의 심폐기능은 60일 동안 정지되고, 그 짧은 시간에 우리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최소한의 검증도 소홀한 채 한 줄기 바람에 떠밀려 대통령을 급조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로또 복권에 당첨되듯 대통령에 오른 사람은 민심이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국리민복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역사 지우기에만 달려들 것이 뻔하다. 그리고 국민의 복지와 안위보다 새로운 권력을 구축하기에 급급할 것이다.        

 슬픈 촛불이여! 
  부디 우리는 그때까지 우리를 현혹하려는 패악한 권력 앞에 이 촛불을 꺼트리지 말고 곧추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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