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 소장] 사회적 거리두기, 마음의 거리두기 아니다
2020-03-23 입력 | 기사승인 : 2020-03-23
데스크 bokji@ibokji.com


<이동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 


감염의 불안 속에 외출을 못하고 있던 3월의 첫 일요일, 개학이 연기된 고등학생 아들의 인강 교재가 갑자기 필요하게 되어 광화문의 한 서점으로 급히 가게 되었습니다.


몇 장 안 남은 KF-80 마스크 하나를 꺼내어 착용하고 광화문행 버스에 올라타서는 불안한 마음에 몇 명 안 되는 승객들 중 혹시 몸이 불편해 보이는 분은 없는지 살펴보고 자리에 앉았다가 뒷 자리에서 들려오는 기침 소리에 화들짝 놀라 목적지보다 두세 정거장 앞, 서울역에서 내려서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역에서 광화문까지의 거리에는 평소의 인파를 찾아볼 수 없이 너무도 적막했습니다. 가끔 눈에 띄는 행인들은 예외 없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위축된 자세로 조심 조심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온 국민의 감염에의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음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치료약제와 예방백신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처방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그러나 막상 실천하려 하면 우리 마음은 두 갈래가 됩니다. 감염이 두려워 피하고 싶은 마음, 그러면서도 피하는 것에 대해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서로 부딪히게 마련이죠.


요즘 진료실에 마스크를 쓰고 들어오시면서 미안해 하는 환자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께는 “괜찮습니다. 다같이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저도 마스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씀드리며 마음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오래 전에 잡아둔 후배와의 주말 약속이 다가오면서 잠시 두 갈래 마음이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후배를 위로해 주기 위해 모처럼 잡아둔 약속인데 사회적 거리두기의 차원이지만 미루자고 말하기가 미안하고 망설여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마음을 알았는지 후배가 먼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모범을 실천하기 위해 연기하심이 어떨지요?’라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19에 대항할 별다른 무기가 없는 현 상황에서 각자를 보호할 안전 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상대를 배제하거나 멀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망설이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우리 마음의 작용이 생존을 위해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와 같은 미지의 위험이 닥칠 경우,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감정의 뇌’인 편도체입니다. 그 결과 두려움의 감정이 압도하고 위험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려 합니다. 달아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분노의 감정이 뒤덮여서 위험을 배제하려 합니다. 지금 온 국민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는 두려움, 불안의 감정, 일부 분노, 혐오, 배제의 감정 모두가 생존을 위한 설계의 결과인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연의 설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두려움의 감정에 압도되면서 약간의 배제, 때로는 혐오의 감정도 느끼게 마련이어서 막상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려 할 때, 그 대상이 되는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에 망설이게 되기도 하고 자칫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회적 배제로 흐를 위험도 없지 않는 것입니다.




<걱정과 배려의 마음을 담은 통화나 SNS 메시지를 보내는 등

멀어진 물리적 거리에 반비례 하여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노력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 


이 상황에서 우리는 자연의 또다른 설계인 ‘이성의 뇌’를 작동시켜야 합니다. 전두엽의 뇌세포들을 최대한 활성화시켜 감정의 격랑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 마음을 다잡고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현 상황에서는 방역이 최선의 대책이니 사회적 거리 두기를 나의 안전, 이웃의 안전을 위해 실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로 멀어진 물리적 거리에 반비례 하여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몸은 멀리 있으나 마음을 더 가까이 하는 노력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물리적 거리는 두더라도 심리적 거리는 더욱 가까이 할 수 있는 많은 수단들이 있습니다.


걱정과 배려의 마음을 담은 통화나, SNS 메시지를 그리운 사람들에게 보낼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큰 두려움 속에 있을 대구 시민들에게 응원의 댓글을 달 수 있고 바이러스와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의료진들과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움의 깊이를 더하는, 그리운 마음을 배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만나고 싶으나 만나지 못하는 친구, 친지들과의 추억을 떠올리고 마음에만 두고 있으면서 해주지 못해 아쉬웠던 말들을 곱씹어 보면서 바이러스가 극복된 이후의 재회를 준비해 보는 것이지요. 사실 그동안 우리의 많은 만남들이 앞만 보고 달리는 와중에 스쳐 지나가듯 이루어진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보다 깊은 마음을 나누지 못한 채 말이죠.


그래서 마치 옛 시조의 한 구절처럼 이번의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간을 ‘그리운 마음의 허리를 베어내어 고이 접어 넣어두었다가, 코로나가 물러난 이후 굽이굽이 펴기 위한’ 준비의 기간으로 삼으면서 우리 마음 속에 신뢰, 연민, 연대의 온기를 키우고 실천해 나간다면 그 온기의 힘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나는 날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데스크 bokji@ibokj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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